햇살이 뜨겁다. 납작한 슬리퍼를 신고 함께 산책을 한다. 길고 부드러운 원피스를 갖고 싶어하는 걸 보면, 차츰 청바지가 불편해지는 모양이었다. 지민의 느려진 걸음에 맞춰 몇 번인가 맞잡은 손을 고쳐잡고, 물병을 건네고, 그녀가 물을 마시느라 잠시 고개를 젖힌 동안, 그 사이 손목이 조금 더 가늘어진 게 아닐까 같은 것을 생각한다.
"배가 금방 꺼지네. 밥 먹을까?"
아니, 착각인가?
"그럴까, 뭐 먹고 싶어?"
"음……."
지민은 물병의 뚜껑을 잠그면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이국의 저자에는 느릿느릿한 활기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맛있어보이는 음식냄새도 음악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현실적인 지민은 언제나 가까이 있는 음식들 사이에서 먹고 싶은 것을 정했기에, 그 중 한 곳이 오늘의 식사장소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지민은 행선지를 정하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동그란 배를 내려다본다. 그런 이유로 기율의 눈에는 동그란 지민의 머리가 보였다.
"얘는 아무 말도 안 하네."
동그란 머리가 또 갸우뚱, 한다.
"말하기도 해?"
"아니. 한 번도 말 한 적 없는데."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같은 데 보면, 애기가 먹고 싶어한다는 둥 하면서 이것저것 사오게 시키잖아? 애기 엄마가 먹고 싶은걸 그냥 그렇게 말한 건가? 그럴지도. 하지만 결국은 아이가 먹고 싶어하니까 엄마도 먹고 싶어진 게 아닐까? 오오, 그럴듯한데? 그럴지도. 아직 한 몸이니까. 응.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래서 지민인 뭐가 먹고 싶은데?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묻자,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햇볕에 탄 머리카락이 가볍게 손바닥에 스친다.
"그럼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거 말해도 되나?"
"당연하지. 그게 아이가 먹고 싶은 거니까."
"말하면, 꼭 그거 먹기다?"
"……일단 말해봐. 오빠가 다 사드립니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보이긴 했지만, 장소의 제약 탓에 돈이 있어도 사다줄 수 없는 음식들은 있기 마련이다. 기율이 겪었던 첫 임산부인 나리는 홀몸이었을 때도 식탐이 많았고 떡볶이를 좋아했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는 더 자주 더 많이 더 열심히 떡볶이를 찾아댔던 것이다. 어떤 날에는 떡볶이를 기본으로 두고 김밥에 순대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으면서 애가 먹고 싶은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게다가 구하기 쉬운 음식들이고, 그렇지? 하고 당당하게 배를 문지르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매콤한 것을 먹은 것도 꽤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우와."
"왜, 뭔데?"
내심 정말 떡볶이 같은 걸 사달라고 하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묻자, 지민이 눈매를 곱게 접으며 대답했다.
"네가 지금 먹고 싶은 거요."
어……떡볶이 말씀이신가요?
태명이 있을까? 태명.. 애기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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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따사로운 이국에서 남편이랑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손을 꼭 움켜쥐면서 유, 율아... 하고 자리에 주저앉는 임산부를 쓰고 싶었었어 그런데 윤인 생일이 2월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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