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지글.
잘게 썰린 햄과 야채들이 식욕을 돋구는 소리를 내며 들들 볶이고 있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의 지글거리는 소리를 반주삼아 지민은 오래된 샹송을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차츰 소리가 커지고 가사가 붙더니, 어느샌가 영어판으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Blue, blue, my love is blue. Blue is my world, now I'm without you…….
"엄마, 슬퍼요?"
옆에서 노래를 경청하고 있던 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지민의 노래가 뚝 그쳤다.
"애기는 왜 비오는 날에 부침개가 먹고 싶어지는지 알아?"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육아방침이었다.
"……우린 부침개 안 먹잖아요? 가끔 나리 이모가 하는 거 아니면."
"그건 말이지, 저 지글지글하는 기름소리가 비 떨어지는 소리랑 비슷해서래."
"게다가 지금은 비도 안 오는데요."
"내일은 비 온대. 일기예보 봤어."
"그리고 지금 먹는 건 부침개가 아니라 햄야채볶음밥이잖아요."
"그렇네, 내일 비 오면 전화해서 이모랑 애기들이랑 놀러오라 그럴까? 이모가 부침개 해줄 것 같다."
"……."
팽팽하고 느긋한 대화 끝에 결국 윤이 네 뭐, 부침개……부침개 좋네요. 하고 대답하자 지민이 턱을 괴며 웃는다. 이 정도로 대화가 엉망진창이면, 나이 또래들보다 영특한 윤보다도 어떻게든 대화가 이어지게 만드는 지민 쪽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노래를 다시 시작하는 대신 지민이 흥얼거리듯 말했다. 율아, 밥은 어젯 밤에 해놨어. 밥솥 열어봐.
"아, 응."
한 줄로 상황을 요약하자면,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메뉴는 짜파게티가 아니지만, 그녀가 대견하게 여기는 것은 오랜만에 부엌에 선 남편 쪽인 것이 틀림없었다. 밥솥에서 밥을 퍼다 프라이팬 위에 끼얹자,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올라온다. 납작한 나무주걱으로 밥을 으깨면서 볶고있던 재료들과 조금씩 섞어나간다.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지민이 입을 열었다. 애기야. 실은 아빠도 요리를 잘 해요.
"사귈 적에만 해도, 아빠네 집에서 자다가 깨서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면 아빠는 잠옷차림 그대로 일어나서 앞치마를 매줬지……."
글쎄, 지금이라고 사정이 달라진 건 아니다, 징징거리는 방법이 조금 덜 과격한 쪽으로 변했을 뿐. 지금도 지민이 침대에서 아, 율이가 한 밥 먹고 싶다. 하고 다 들리게 혼잣말을 하지 않았다면 기율이 손수 앞치마를 입었을 리는 없었다.
"아빠네 집이요?"
"처음부터 아빠랑 엄마가 한 집에서 산 건 아니거든요. 따로따로 자기 집에서 살다가 알게 된 사이니까……결혼하기 전엔 가끔 엄마가 아빠 집에서 자기도 하고 가끔 아빠가 엄마 집에서 자기도 하고 그랬지."
"어……그럼 자기 집에 안 가도 되는 거에요?"
"아마도? 다 큰 어른이잖아. 혼자 살았으니까 걱정시킬 사람도 없는걸. 그리고,"
"그리고요?"
"그리고, 밤에도 헤어지기 싫었으니까."
……지글지글, 지글지글지글.
잠시 주걱이 멈춘다. 별로 지민의 말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모처럼 아내가 아들과의 문답에 성심성의껏 앞뒤가 맞는 대답을 하고 있어서도 아니고, 마침 볶음밥이 완성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주걱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메뉴는 한정되어있지만, 기술적인 점에 한해 나무랄 곳은 없는 일요일의 짜파게티……아니, 햄야채라이스의 요리사였다.
그러다가 이렇게 결혼해서 계-속 헤어지지 않기로 서로 약속을 한 거야. 지민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끝마쳤다. 등 뒤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은 없지만, 지금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애기도 크면 알게 되겠지만, 누드 에이프런 차림은 남자가 해도 여자가 해도 지켜보기에……."
"ㅡ저기요, 바지는 입고 있었습니다만."
완성된 음식을 지민의 접시에 조금 덜어주면서 잘못된 기억을 정정해준다. 지민이 뻔뻔하게 그랬나? 하고 웃으며 수저를 든다. 잘게 썬 햄과 당근, 감자, 완두콩을 흰 밥과 함께 볶은 정도지만, 색감만은 알록달록해서 그럭저럭 먹을만한 음식처럼 보인다. 지민이 볶음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천천히 우물거린다. 온 가족ㅡ이라고 해봤자 남은 구성원은 둘 뿐이지만ㅡ이 지민의 입에서 시식평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숨을 삼켰다. 지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주 기율 씨."
"응. 별로야?"
"볶음밥에 반했습니다. 결혼해줘."
아?
심각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지민이 씩 웃었다. 몇 번째일지 모를 그녀의 청혼에 기율은 어김없이 눈을 휘었다.
몇 번을 들어도, 듣기 좋은 울림이란 데는 틀림이 없다.
"죄송합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미 가정이 있는 몸이라……."
"어머, 정말?"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기율은 익살스레 왼손의 반지를 보여준다. 지민이 짐짓 실망한 표정을 연기하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녀가 일부러 입가에 가져간 그 왼손에도, 기율의 것과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반짝이고 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계속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한' 그 날에, 기율이 손수 끼워준 것이다.
"누구 남편인진 몰라도, 아내 분은 참 좋으시겠네요."
"그러게요. 누구 남편인지 몰라도."
몸을 숙여 그 아내 분께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데, 지켜보고 있던 아들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저…….
"응?"
"그래서 누드 에이프런이 무슨 차림인데요?"
"……."
지민이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When, we, met…….
"How the bright, sun, shone……."
"알았어요. 나중에 사전 찾아보면 되잖아요."
사전에... 없겠지...?
새삼 프로포즈 로그를 투ㅋ척ㅋ.......제목이 저런 이유에 대해선 언젠가 릐님이 연성을 해주시겠지...ㅋ!
귤이의 캐릭터문답을 보고 느낀 것이 있어 고백로그도 다시 잡았는데 이게 먼저 끝났음... ... 고자라 죄송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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