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은 아직도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아빠와는 달리 어딘가 일을 나가지 않으면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늘 커다란 화면과 작은 책과 종이들을 번갈아 노려보면서 뭔가 두드려서 글씨를 만드는 일인데, 일본어로 쓰인 책을 한국어로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아빠가 일하는 모습은 몇 번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엄마의 일과는 장 단점이 정반대였다. 아빠의 일은 조금 위험하지만 일을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분명하고, 엄마의 일은 안전하다 못해 일터에 나갈 일도 없지만 쉬는 시간은 따로 없다. 내 식사를 챙기는 건 잊지 않지만, 잠을 거르거나 하면서 일을 하는 때도 많은 것 같다.
아, 아, 오늘 저녁엔 된장찌개를 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나는 아직 '미취학아동'ㅡ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애기ㅡ이고 놀이방 따위에 나가는 일도 없으니까 위험한 일도 없고, 일과는 거의 언제나 쉬는 시간 쉬는 시간 쉬는 시간에 가깝다.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가끔 목이 마른 엄마의 차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가끔 심심해하는 아빠의 놀이상대가 되어주다보면 쉽게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밤에는, 엄마가(혹은 아빠가) 애기는(아들은) 이제 잘 시간이에요~ 하고 나를 짊어매거나 안아들거나 해서 침대까지 데려다준다. 이제 그 정도는 스스로도 괜찮은 나이가 아닌가 싶지만, 잘 자란 인사나 뽀뽀를 받는 건 싫지 않으니까 불만은 없다.
그런데요?
두부를 깜박했지 뭐야.
엄마는 몇 번이나 내게 밤인사를 해주는 동안에도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두부? 응. 두부가 없는 된장찌개는 된장찌개가 아닌 거에요. 단어만을 두고 생각하면 된장이 없어야 된장찌개가 아니게 되는 거 아닐까 싶지만, 엄마가 너무 피곤해보이니까 뭔가 다른 의미가 있겠지 생각한다. 옷장 앞에 서 있는 엄마는, 분명 평평한 바닥 위에 서 있을텐데 살짝 기울어져있다. 보아하니 노란색 파카와 하얀색 코트 중에 하나를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음. 그러니까…….
사러 가게요?
아들 입장으로써는 저대로 외출하겠다니 엄마가 좀 걱정된다. 저러다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강아지 뽀삐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붙이고 다녀야할지도……그런 '일'은 피하고 싶다. 따라나가려면 파카든 코트든 무언가 옷을 입자 싶어서 침대에서 내려가려는데, 엄마가 아무 것도 고르지 않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아니, 일단 자자.
세 시간만 자고 얼른 일어나서 쌀 씻어서 불려놓고 슈퍼 가서 두부 사 온 다음, 아빠가 집에 오기 전에 저녁 준비를 뚝딱뚝딱 다 끝내버리는 거야.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 냠냠. 맛있겠다, 두부 잔뜩 넣은 된장찌개.
……그 말대로 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행이다 싶다.
엄마 깨워줄 수 있지?
그럼요.
대답을 듣자마자 엄마는 침대에 쓰러졌다. 나까지 끌어안은 채라서 갑자기 눈 앞이 흐려졌다가 이불에 반쯤 파묻힌다. 저도 같이 세 시간 자는 건가요? 응. 대답인지 흥얼거림의 앞부분인지 모르게, 엄마가 목소리를 흘렸다.
빨리 애기가 커서 더 똑똑해지면 좋겠다. 그럼 애기야, 미안한데 두부 한 모만 사다줄래? 사오는 걸 잊어버렸거든. 천 원 줄테니까 거스름돈 200원은 애기가 가지렴 같은 것도 할 수 있을텐데……그럼 애기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저 지금 숙제하고 있는데요. 안 보이세요? 하면서 엄마 부탁을 거절하겠지? 그럼 내가 어머, 그래? 그럼 두부는 사오고 200원도 남겨오렴. 한 번만 더 싫다고 하면 그 돈으로 콩나물도 500원어치 사와야할걸? 하고 위엄있게 대답하는 거야. 그럼 애기는 어쩔 수 없이 심부름을 나가는거지. 왜냐며언, 자기 돈을 보태가면서 콩나물까지 사오는 건 더 싫을테니까…….
…….
몇 살이나 먹어야 지금보다 더 똑똑해지는 건진 모르겠지만, 미래의 아들을 지나치게 건방지고 신경질적인 캐릭터로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엄마의 목소리는 반쯤 잠결이었다. 여기서 같이 자버리면 세 시간 뒤에 엄마를 깨워줄 수 없다는 걸 일깨워줘야지 싶어서 어깨를 조금 움직이는데, 엄마의 팔이 힘없이 미끄러진다. 놀랍게도, 엄마는 그대로 잠들어버린 것 같았다. 손을 들어서 눈 앞에 저어봤지만, 속눈썹을 몇 번 파르르 떨다가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엄마, 자요?
물론 소리내어 묻진 않았다. 침대에 몸을 던진 것처럼 하고 푹 잠든 사람 앞에서 그런 걸 묻고 있는 건 좀 실례같다.
일단 엄마의 품에서 미끄러져 내려온다. 화장대 옆에 천 원짜리 지폐 두 장과 동전 몇 개가 널브러져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엄마 말에 따라 뺄셈을 해보면 두부 한 모는 800원인 것 같고, 아빠ㅡ그리고 아빠의 차ㅡ가 없는 날에 엄마가 자주 가는 슈퍼에는 나도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 같다. 다녀오는 덴 반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며칠만에 잠들었으니 내가 그런 '일'을 하고 다시 돌아올 사이에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 나도 일을 해볼까.
천 원짜리 두 장을 슬쩍 챙겨서 방을 나오는 길에, 코트와 파카 중에 뭘 입을까 잠깐 고민해본다.
뭘 입어도 어느 정도는 추울테고 뭘 입어도 난 충분히 멋지겠지 생각한다.
편수라도 나눠보기로 결심한듯.. ... ...
비교적 엉망진창인 2장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