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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Knock, knock




 응?

 기율의 주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알고 지내는 동안 대작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반주 한 두 잔이나 캔맥주 몇 모금 정도가 전부였다. 그에게 알코올과 관련한 취미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금방 알 수 있다.

 율아, 율아?
 ㅡ으응.

 피곤해보이는 목소리가 등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와서, 지민은 잠시 진저리를 쳤다. 취했어? 으응……. 같은 대답을 하면서, 기율은 더 바짝 머리를 기대온다. 빛을 받으면 유독 옅은 갈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지민의 목께로도 한 웅큼 흘러내린다. 술에 취한 남자친구의 체중이 무너지듯 지민의 몸에 감겨있다. 이 쪽에서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팔에 안겨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래. 이 남자는 술에 취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으응.
 이번엔 물은 것도 없는데, 기율이 또 대답을 흘린다.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묵직한 인상은 아니지만 키가 이 정도로 크면 지민에게도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지민은 기억을 더듬어 기율의 주량을 가늠해봤다. 평균은 웃도는 것 같았지만 즐겨 마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입생 환영회에서나 할 법한 술게임 같은 건 적당할 때 그만뒀어야 했던걸까.

 글쎄.
 ……으응?
 아니. 아니야.

 가끔은 이런 기율도 나쁘지 않다.

 만취한 술친구들을 집까지 업어다 나르는 일은 익숙했다. 기대기에 든든한 여자친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지민이 비틀거리거나 추위에 떨거나 넘어지지 않는 데엔 그 쪽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17센티나 큰 남자를 짊어지기엔 기합이 필요할 것 같아서, 지민은 잠시 그대로 기다리기로 한다. 애써 어깨의 힘을 풀자 기율의 팔은 이제 허리에 바짝 감겨온다. 뭐가 아닌데? 낮게 잠기고, 조금 혀가 꼬인 목소리가 몸을 통해 바로 전해진다. 귀가 열려있는 모양이니 어느 노래처럼 취중진담 같은 걸 나눌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맨정신으로 무슨 바보같은 질문을 해버릴지 몰랐다.

 지민아.

 남자친구의 주사는 정말 귀여웠다.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조금 무거웠지만 버틸만 했고, 충분히 그 품이 따뜻했고, 기대주는 것이 기뻤다.
 그런데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무서웠다. 사실 조금 비겁한 일처럼도 느껴진다.

 자고 가도…….
 그 때 기율이 웅얼거렸다, 여전히 조금 잠기고, 조금 혀가 꼬인 목소리로.

 헤어졌던 사이에, 기율은 지민이 몸에 대고 말하는 데에 약하다는 걸 잊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그의 잠긴 목소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도……. 아니면 취한 나머지 그런 것을 생각해줄 겨를이 없었거나.
 기율이 어느 쪽이든, 지민은 그를 짊어지고 일어서는 데엔 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응. 내 침대에서 자.

 대답하면서 아랫배를 잔뜩 부풀렸다가 꺼뜨리자, 기율의 어깨도 조금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읏차, 하고 기합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기율은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그래, 하자 순순히 침대까지 끌려왔다. 바닥에 다리가 비틀비틀 끌리는 것도 같았지만, 그의 큰 키까지는 지민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다.



 기율을 침대에 눕히고 전기담요를 빼내려는데 잘 되질 않았다. 담요를 빼낸 다음에 눕혔어야 했다고 생각하면서 힘껏 잡아당겼는데, 왠지 기율을 떼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왜 그래? 네가 무거워서 담요가……. 동거인의 침대는 이제 지민의 방에 없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담요를 깔고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하기 전에 허리가 꺾이고 만다. 불도 못 껐는데, 기율은 누워서 퍼진 탓인지 두 배로 무겁게 느껴졌다. 지민은 팔에 깔린 채 작게 숨을 뱉었다.
 차라리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얼마든지 취중을 핑계로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실연은 아팠는지, 그 사이 한 번쯤은 나를 진지하게 여겨줬을지, 다시 찾아간 날엔 무슨 생각으로 날 집에 들여보냈는지, 울면서 걸었던 전화를 받은 게 너였다면, 너는 나를 구하러 와줬을지……. 대답 같은 것은 듣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지민이 그런 것을 궁금해한다는 걸, 알고 싶어한다는 걸, 비틀거리는 순간만에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기율과 지민이 모두 취하지 않은 날에, 똑바로 마주 선 채 그런 것에 대해 들을 수 있도록.
 그가 취하지 않고도 어깨에 기대오는 날이 많아지도록.

 하얀 천장에는 바랜 색의 별 스티커가 몇 장 붙어있다. 몇 장이었는지는 잊어버렸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견뎌야할만큼 외로운 순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민은 눈을 감았다. 형광등의 하얀 불빛이 눈꺼풀 밑으로 잔뜩 스며들었다. 그런데도 졸음이 쏟아졌다. 그제야, 어깨를 누르고 있던 기율의 팔에 힘이 풀렸다. 그것이 너무 따뜻했다.





쓰다가 비밀글로 저장해뒀을 때만 해도 참 밝고 단 내용이었는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귤밀이네연. 귤밀같지 않아도 귤밀이라고 우겨봐요 이런 글에 이런 저라 늘 죄송합니다. 술 싫다는 귤이한테 술먹여서 죄송하고 유쾌한 내용이 못 되서 죄송하고 불도 안 껐는데 안 밝아서 죄송하고... 뻘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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