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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Good bye, Ophelia




 바다가 해를 삼킨 지 오랜 밤, 지민은 갑판에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검은 수면 위로 신부의 실루엣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지민은 멋없는 수신음을 들으면서, 그녀의 눈부시게 행복한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꼭 다른 사람의 미소를 보는 것만 같아서,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뜬다.
 그 작고 닳은 기계 안에는 핸드폰을 산 첫 날부터 여지껏 저장해 온 수많은 번호와 그 번호로 연결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것과 같은 갯수만큼의 기념일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긴 시간동안 애착해온 기록이었지만, 그런 것은 썩 중요하지 않았다, 지민이 그 대부분을 시간에 흘려보냈기에. 그 날들만큼의 수많은 이별도, 지민은 겪었다.

 여보세요? 지민이니?

 마침,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뭐라고 저장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애시당초 저장하지 않았던 번호였다.

 수면 위의 신부도 지민을 따라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엔가 미소를 잃고 물 속에 잠겨 있다. 그녀는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더 이상 웃지 않는 대신, 울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지민은 그녀의 부풀어 있는 배를 보았다. 불행한 표정의 그녀는, 하얀 환자복을 입은 채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한 번도 헤엄치지 않았다. 차가운 물에 걸음이 느려지다가, 어디선가 무릎이 꺾이고, 파도가 그녀를 덮쳤다……. 그 순간,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배 위의 지민과 눈이 마주친다.

 오빠.

 입에 잘 담지 않던 호칭을 흘리며, 지민은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녀의 깨끗한 얼굴은 수면에 비춘 마냥 지민을 닮았다. 그녀는 파도에 휩쓸려 천천히 익사한다.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혹은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그리워해야 할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아보였다. 지민은 외로이 죽어가는 여자에게 가느다란 연민을 느꼈지만, 폐에 물이 차는 듯한 기분에 갑판에서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다른 세계인 마냥 속 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잘 지냈어?

 나 결혼해.

 그래서, 지민은 대답없이 용건을 말했다.

 하얀 시체의 그림자는 아직껏 수면 위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가던 그녀의 다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모래를 밟던 발 끝에는 이제 이름모를 해초만이 얽혀있다. 뱃 속의 아이는 언제 죽었을까? 적어도 지금은 죽어있을 것이었다. 그녀와 아이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지민은 왠지 모르게 알고 있었다.

 이야, 드디어……잠깐, 결혼? 정말? 언제?
 ……오늘.

 어? 청첩장이라도 보내지 그랬어? 친오빠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민은 그녀도 행복으로 가는 길을 골랐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길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어떻게든 행복해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불행했던 것은 행복한 순간의 맛을 너무 잘 알아서였다. 지민은 그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불행은 한 때 지민의 것이었기에, 그런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여행 일정이 좀 길어서, 이만 끊어야겠어.
 잠깐만. 지민아…….
 안녕 오빠, 가끔 편지할게.

 넌 내 주소도 모르잖아? 하고 되묻는 소리는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통화를 끊기 전에 핸드폰을 물 속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지민이 이름과 의미를 담으려 애썼던 수많은 나날들이, 그 시간 동안의 사랑과 만남과 이별의 순간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방금 손에서 떠나보낸 것이 동그랗게 파문을 일으켜, 시체의 하얀 그림자를 몇 번이나 게워올렸다. 그녀는 곧 흩어져 하얀 바다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곧 배 위의 신부만이 남았다.

 안녕, 안녕.

 일정이 긴 여행을 앞뒀기에, 당분간 핸드폰이 필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민아, 뭐해?
 응? 아니……아무 것도.

 등 뒤에는 하얀 턱시도를 입은 기율이 서 있었다. 어디 갔나 했잖아. 춥지 않아? 달빛을 등진 채 웃는 모습이 눈부시게 빛났다. 지민은 그의 다정한 눈을 마주하며, 그에게 질세라 환하게 미소짓는다. 불쑥 몸을 내맡기며 매달리자, 기율의 팔이 지민을 감싸안았다. 기분 좋아? 팔 안에서, 지민은 대답했다. 응. 기분 좋아. 날아갈 것 같아. 날아가버리면 안 되는데? 꽉 붙잡고 있어야겠네. 어디 안 날아갑니다, 못 날아요. 단순한 비유법입니다. 이 쪽도 마찬가진데요?

 ……나도 알지만,

 지민은 그녀와는 달리 울었고 웃었고 그리워했기에, 눈 앞의 빛을 움켜쥐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꼭 잡아줘.

 ㅡ그러니까, 이 이와 함께라면,
 영영 지민이 그녀가 되는 미래는 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기로 약속한거잖아? 오늘.

 열렬한 믿음이 닿았을까, 기율이 당연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응, 그랬지. 넌 이제 끝난 거에요. 나한테 꽉 잡혀사는 거에요. ……그거 그 의미의 잡는다였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기율이 웃음을 터뜨렸다. 바다 위에는 달과 배와 두 사람 뿐이었고, 두 사람 분의 미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지민은 그 사실에 깊이 안도한다. 이만 들어갈까. 잠깐만. 응? 퉤, 퉤, 퉤. 지민은 성심성의껏 세 번 침을 뱉고 돌아왔다. 왜 그래? 안 좋은 꿈 꾸면 이렇게 하는거래. 안 좋은 꿈 꿨어?

 아니 그냥, 입 안이 조금 짜서.





앞 버전의 귤이가 더 귀여워서 지울 수가 없고 이건 뭐 퇴고를 해도 병신같을 뿐이고... 왜 꼭 이것만은 쓰리라 맘먹을수록 글이 구려질까?ㅋㅋㅋㅋㅋㅋ 근데 난 원래 병신이었지?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곸ㅋㅋㅋㅋㅋㅋ아이곸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의 원제는 안녕 패러렐 안녕히 안녕히.. ..인듯. 처음 결혼식 얘길 쓸 때부터 이걸 쓰고 싶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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