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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Antifreeze




 귤은 겨울과일이다. 길거리의 행상에 귤바구니가 보이기 시작한 걸 보면 다시 겨울이 온 모양이었다. 지민은 고개를 돌려, 나란히 걷고 있던 남자친구를 잠시 올려다본다. 그의 온화한 얼굴 위로 크리스마스 풍의 화려한 불빛들이 울긋불긋하게 비쳐보였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거리에는 온통 캐롤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굳이 귤이 아니어도 겨울이 온 것은 알 수 있다. 내일이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두 사람은 이브부터 사귀었으니까, 내일이면 1주년이 되는 셈이다.

 "……."

 기율을 만난 지 벌써 1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은 잘 와닿지 않는다. 1년이 너무 길었던 걸까, 5년 즈음은 된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 짧았던 것도 같아서, 겨우 며칠 전에 번호를 교환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지민은 잠깐, 어느 쪽이 더 그럴 듯한 착각인지 고민하느라 걸음을 멈췄다. 꼭 1주년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율아."
 "응."

 헤어지게 될 날이 올거란 건 어느 날엔가 깨달았었다. 언제였을까, 그건.

 "내일이 벌써 이브네."
 "그렇지?"

 버스 정류장에서 입을 맞췄던 어느 가을이었을까,
 파도 위를 떠다니던 어느 여름이었을까, 그가 보고 싶어 핸드폰을 열었던 어느 봄이었을까,

 사실 '어느' 같은 관사를 붙일 필요는 없다. 그와는 꼭 1년동안 딱 한 번의 계절을 보냈으니까, 어느 순간일지라도 단 한 번밖에 없었을 그 봄이고, 그 여름이고, 그 가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어쩌면 함께 제과점에 들어가 케이크를 고르던 첫 날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민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율이 느슨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벌써 1년이네. 케이크라도 하나 살까?"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되겠지만……. 하면서, 거리의 불빛들을 둘러본다. 지민은 그런 기율을 1년 전에도 본 기억이 있었다. 그 많은 거리의 빛들 사이에서 제과점을 찾아내면, 손을 잡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케이크를 고르게 해줄 것이다. 어쩌면 카운터의 점원도 1년 전과 같은 인사를 건넬지도 모른다. 연인이신가봐요, 잘 어울리시네요. 오붓한 크리스마스 이브 되시길 바랄게요……하고. 그 때, 지민은 기율에게 돌아보며 물었었다. 연인일까?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올해에는 같은 질문을 할 순 없을 것이다. 1년 전에 기율이 그 질문에 웃었으니까.

 "저기 보이네, 베이커리."
 "……지금 사게?"
 "생각난 김에. 아니면 내일 살까?"

 지민은 잠시 상처받는다. 내일 그와의 1주년을 축하하며 함께 케이크의 촛불을 끌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이별을 말하기엔 기율이 너무 빛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지민의 마음 한 켠을 시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온유하고 빛나는 연애도 분명히 끝맺을 날이 올테고, 그 끝은 결혼이 아니고서야 이별일 것이다.

 "……기율아."
 "응?"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면, 차라리 오늘이 좋았다. 꼭 채운 1년인 것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스러웠던 365일인 것이.

 "무슨 일이야? 지민아."
 "……."

 금새 눈빛을 바꾸며 안색을 살펴주는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상냥하기 그지없다. 기율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이별을 말하면 그가 조금은 슬퍼해줄지, 지민은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결혼할래?"
 "ㅡ응?"

 아. 잘못 말했다.





뻘드립.... 케이크를 사자. 오늘. 1주년 기념이 아니라 실연 기념으로. 뭐 그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잠깐 눈빛교환을 한 뒤에 그렇구나. 응. 유하게 염장을 떨며 제과점으로 걸어가는 내용의 평화로운 이별글을 쓰려고 했습니다만 몹시 졸리고 이미 썰로 풀었으니 마무리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글은 저렇게 방치하기로...:@... 글 끝에 다시 캐롤을 써먹으면서 EX예정 남친의 메리크리스마스를 기원하는 식으로 끝맺고 싶었지만.. 몰라.. 난 망한 것 같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 (꼭 아침에 일어나서) 일반원칙 다섯개를 정리하고 나머지를 외우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본다음 집에 와서 도시와 경제 PPT를 보고... (그런데 이 컴엔 파워포인트가 없는데 어쩌지) 나서 정책학 레포트를 검토하고 다시 정책학 전공서를 읽으면서 밤을 지새우고 미친 화요일 시험을 보러 가겠지... 와웅... 그래도 화요일만 버티면 대략 종강일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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