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신하루 씨가 연습실에 데리러 왔다. 뭐 손님이 왔다고 연습실의 풍경이 변하는 건 없다. 왕, 나리 마누라 생겼냥? 완전 능력있어! 소개팅한 건 어떻게 된거얌! 헐……. 마누라 아녜요. 그 소개팅은……초면부터 술마시러 가서 망했지만……. 하루는 연습실 전통이라고 문자로 말해둔 대로 떡볶이를 한 뭉치 사와서 체면이 살았다. 다같이 떡을 씹으면서 어제 있었던 공연에서 찌질거렸던 부분을 질겅질겅ㅡ아 그러니까 그 씨발, 그 2번 팀 이름이 뭐였지? 솔까말 드럼은 인정하겠는데 쓸데없이 할 말 없으면 기계음 드립하고……대체 어떻게 입상한거지?ㅡ뭐긴요, 드럼 때문이잖아요ㅡ씹었다.
"저 사람이 그 연이 친구?"
"네. 아, 형네 학교 다니는데. 09 경영이래요."
"……09?"
경이로운 05학번의 기율 형이 고개를 기우뚱하더니, 어렵게 말을 골랐다.
"……요즘 애들은 대학입시를 되게 힘들게 하나보네……."
댁이 너무 학교를 일찍 간 거 아니우? 싶은 것도 있긴 하지만, 저 멍청이가 좀 오래 겉돌긴 한 모양이다. 4년쯤 허비한건가? 학교도 꿇었다던 거 같고, 재수도 했다는 거 같고, 그래도 당당한 군필이니까 우연보다 훨씬 낫지, 암. 그래도 엄청나게 고달픈 학창시절을 보낸 노안으로 보이느니 제 나이로 보이는 쪽이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낫다.
"형보다 나이 많을걸? 연이가 그러는데, 연이네 학교 짱이었대."
"……아?"
기율 형은 조금 웃음섞인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학교 짱 씨가 자꾸 이쪽 쳐다보는 거 같거든, 나 괜찮은거야? 하고 조곤조곤 묻길래 고개를 훽 들어보자, 과거야 어찌됐든 지금은 그냥 멍청이가 된 신하루씨가 떡볶이를 먹던 그대로 얼어버렸다. 훠이, 하려고 손을 들려는데 풀죽은 표정으로 아닌 척 시선을 돌린다.
"……."
사실 신하루 씨는 나한테 한참 오빠지만, 저럴 때는 너무 멍청해보여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안 그래보여도 쟤 얼마나 착한데. 순해서 형 절대 못 때릴걸."
"……으음, 그래?"
"응. 안 그래보이지만."
"……잘 모르겠지만, 하루 씨한테도 다 들릴텐데."
들리라지, 사실 연습실이 너무 좁아서 소리가 안 들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우왕, 마누라 확 휘어잡았구낭! 파이팅! 하고 지유 형이 등을 퍽퍽 치고 있을 정도니까 말 다했지. 아, 저러다 칠칠맞게 티셔츠에 떡볶이 국물 한 방울 뚝 흘리는 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괜히 하얀 옷 입고 와서는……아무거나 입어도 옷걸이가 되긴 하지만 그렇다쳐도 너무 생각이 없다. 안 그래도 비교돼서 같이 다니기 싫은데, 빨간 얼룩까지 지면 쪽팔리기까지 해서 어떻게 데리고 다닌담…….
"이제 됐지?"
"응."
뭐 어쨌든, 아직 뭘 흘리진 않은 것 같고 매니큐어도 다 발랐으니 이제 신하루 씨가 한눈팔고 있을 일도 없을 거다.
내 손보다 더 예뻐진 손을 놓아주면서 혼자 뿌듯해하는 동안, 기율 형은 가만히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형은 연우 형처럼 쪼잔하지 않으니까 색이 맘에 안 든다는 둥 하진 않을테다. 마음에 들어? 하고 묻는데, 형이 되물었다.
"상관은 없지만, 왜 하필 연두색이야?"
"……."
이럴 수가, 남자들은 다 밴댕이 속이다.
"아니, 연우 형이 자긴 연두색이 좋다잖아. 그래서 사버렸는데."
"연우 형……?"
"……왜? 연두색 별로야?"
눈치를 살피면서 묻는데, 형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있다. 설마 화났나. 드디어 주기율 씨의 화난 모습을 포착하는 건가, 그래도 다 칠한 것도 아니고 몇 개밖에 안 바른건데 화났나……? 그래도 이런 데에 맞서 싸우는 건 연우 형 정도한테나 재미있는 것 같다. 기율 형은 늘 웃는 낯이니 화를 내면 하루보다 훨씬 무서울지도……같은 걸 생각하면서 사과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형이 씁, 하고 입맛을 다셨다. 연우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하고.
그리고 이게 앞에 거랑 이어지는 뒷부분...
05라니.. 귤이 진짜 복학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