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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애매한 서화

이어지는 부록




 이상하네.
 뭐가?

 핸드폰 속의 스케쥴러를 노려보고 있던 지민이 대뜸 말했다. 나한테는 남자애가 없엉. 남자애가 없다니? 과외 말이야. 율이는 여자애 있어? ……으음,
 생각해보면, 딱히 없다.

 이거 봐. 세연이, 이경이, 지원이, 선영이……. 내가 하는 애들은 다 여자애들인데.

 지민이 손을 쭉 뻗어서 얼굴 근처로 핸드폰을 가져다 보여준다. 그 사이 조명시간이 다했는지 액정에 비치는 건 기율의 얼굴 뿐이다. 기율은 손 위에 엄지를 덮어 확인 버튼을 누르고 다시 놔준다. 의외로 쉬는 날이 없는 일정표다. 지민은  보여준 것에 만족한 듯 뿌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아직 가을인데 벌써 목도리에 털장갑으로 중무장을 했다.

 바쁘네. 괜찮아?
 그냥저냥? 근데 다 먹고 쓰고 연애도 하고……하나쯤 더 할까.

 사실 지민은 그렇게 많이 먹거나 많이 사지도 않고, 더군다나 두 사람의 연애비용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일 욕심이 많은 핑계로는 적당한 듯 했다. 지민은 계속 하려던 말을 이었다. 왜 나한텐 여자애들만 붙지?

 나 여고에 여대 가더니 이번엔 여고생 여고생 여고생……. 이쁘고 똑똑한 애들 좋긴 하지만.
 흠. 그럼 남자애들이 좋아?
 ……글쎄?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묻자, 지민이 샐죽 웃었다.

 율이가 귀여우니까 상관없나?



 짧지 않은 거리를 손만 잡고 걷는다. 나중에는 장갑이 불편한지 왼쪽 한 짝은 벗어버리고 맨손을 내민다.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있다. 지민의 걸음속도대로 오른팔이 간간히 흔들렸다. 남자애들은 되게 말수 없지? 지민이 물었다. 응. 뭔가 음울하고 무뚝뚝하고, 맨날 미묘하게 기운없고? 그런 편이지. 가르쳐본거야? 아니, 내 과외는 남자였어서……. 아하. 그랬어? 응. 응. 그치? 둘이 막 사이좋게 조용조용하다가 갑자기 말문 끊기면, 되게 어색하고 그렇잖아. 뭐, 그렇지. 그렇지? 그럴 땐 뭐 먹을 거 달라 그래버려. 먹을 거? 물이나, 뭐 집에 있을 법한 걸로. 물 한 잔? 넵. 물 한 잔. 나갔다 오는 사이 좀 환기되니까. ……아 그리고, 가끔 나 팔아먹어도 됨. 음? 멋모르는 남자애들은 아는 형이 연애 얘기해주면 짱 좋아라 듣는다고 그랬어. 누가 그래? 이건 우리 오빠가. 그, 국문학과? 응. 국문학과 배 현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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