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허구의 애매한 서화

슬리핑 비유티




 지윤은 탑에 갇혀있었다. 왠지 공주였다. 공주였지만 아무데도 갈 수 없었고 아무와도 만날 수 없었다. 심심했다. 따분했다. 방 안을 빙빙 돌았다. 구름을 구경했다. 잠을 잤다. 벽을 타고 자란 담쟁이덩굴의 잎을 세었다. 세다가 수를 잊어버리면 깜빡 졸았다. 또 잤다, 독사과를 먹거나 물레바늘에 찔려서가 아니라 그냥 할 것이 없어서. 그녀가 외로웠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지윤이었다면 외로움이 뭔지 알았을텐데, 꿈 속의 공주는 외로움이 뭔지 몰라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지윤은 외로움을 모르는 외톨이를 연기하는 건 외롭기보다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을 눌렸다.

 워.
 눈을 떴더니 도연이 배 위에 엎드려있었다.

 뭐 해요.
 도연의 집에 놀러왔다가 깜빡 눈을 감은 것이 생각났다. 피곤하긴 했지만, 꿈까지 꿀 줄은 몰랐다. 깔고 잤던 팔을 끄집어 들자 뒤늦게 피가 돌기 시작한다. 저릿저릿한 손 위로 가죽 소파의 바늘땀 자국이 나 있었다. 지윤은 그 손으로 도연의 목 뒤를 짚어보았다. 물론 그것만으론 도연이 자고 싶은 건지 지윤을 깨우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도연은 대충 대답한다. 그리고 그냥 평소의 뜨뜻미지근한 체온이었다.

 난 꿈 꿨는데.
 지윤은 대충 대답하는 도연을 대충 고쳐안는다.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허리에 팔을 감자, 머리가 툭 가슴에 기대왔다. 무슨 꿈? 별로 궁금하지 않은 듯한 도연이 예의를 차려줘서, 지윤은 꿈의 내용을 더듬어본다. 길고 동화같은 꿈이었는데 그새 대부분을 잊어버렸다. 내가 공주였던 거 같아. 그러자 어깨 쯤에서 그럼 제가 이웃나라 왕자냔 거냐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윤은 웃었다. 그거 왠지 미스캐스팅 느낌인데, 하고.

 난 소개팅 들어왔어.
 정말? 예뻐요? 
 그냥.

 예쁘구나?



 
 [여기]에서. 아 왜 트랙백 금지요...
COMMENT